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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제를 지내고 무리지어 노래하고 춤추고 술마시며 발로 땅을 구르고 손뼉을 치고 서로 장단에 맞춰 놀았다는…
    풍물굿의 기원은 인류가 농경생활을 하면서부터 함께 했을것이라고 본다. 진수가 쓴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마한에서 오월에 시뿌리기를 마친 다음 귀신에게 제사를 하게하고 무리지어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기를 밤낮으로 쉬지않고 땅을 구르고 손과 발이 서로 장단을 맞추어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이전부터 농사를 지으며 살면서 축원과 감사를 올리기 위한 제천의식에서 가무연희의 과정에서 풍물의 초기 형태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악기가 구비된 것이 아닌 몸짓위주였고 북정도를 두드리는 정도 였을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다른 타악기가 점차 발전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 풍물은 시대에 따라 풍물굿의 형태가 변천하여 왔는데 축원 형태,노작형태, 걸립형태, ,연예형태가 있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어느 한가지가 강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01축원형태


    축원형태 풍물굿은 위에서 살펴본 <三國志 魏志 東夷傳>의 記錄에서처럼 集團的으로 祝願을 올리기 위하여 베푸는 呪術的, 宗敎的 意識의 性格을 말한다. 이러한 축원형태는 後代로 내려오면서 雜鬼와 액운을 물리치고 豊饒와 安寧을 기원하기 위한 매귀굿, 마을의 수호신에게 마을의 安宅을 祝願하는 마을굿(당산굿), 집을 새로 마련하고 집안의 가장 으뜸신으로 여기는 성주굿, 가뭄이 極甚하여 農作物에 被害가 있을 때 드리는 祈雨祭굿 등의 形態로 나타난다.

    堂山굿을 예로들면 먼저 당집에 가서 堂山祭를 지내고, 마을 공동우물에서 샘굿을 비롯해서 家家戶戶를 방문하여 大門에 들어가면서 치는 문굿, 가신중 으뜸신께 올리는 성주굿, 부엌에서 치는 조왕굿, 장독대에서 치는 천륭굿, 곡간에서 치는 광굿 등 각 處所를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는 등 축원형태가 풍물굿의 近間을 이루어 왔다
    노작형태의 풍물굿은 농사일을 하는 과정, 즉 모심기와 논매기, 풀베기, 타작 등의 순차에 따라 農民의 피로를 덜어주고 勞動의 能率을 높이기 위하여 勞動과 함께 치는 풍물굿으로써 두레굿, 또는 두레풍장굿을 말한다. 이때는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인 勞動謠와 함께 風物굿을 치기도 한다.
    두레굿은 勞動過程 이외에 七月 七夕이나 伯仲날에 마을 殘置를 베푸는 ‘술맥이’에서도 행한다.

    02노작형태


    노작형태풍물굿의 예를 살펴보면, 地域에 따라서 모심을 때는 모심는 소리를 하는데 이때 ‘못방구’라는 북을 치면서 장단을 맞춘다. 그리고 논매기 때 本格的인 두레굿이 펼쳐지는데 편성악기는 꽹과리, 장고, 북, 징이며 각각 1인씩 단촐하게 構成된다.
    마을기를 앞세우고 마을에서 作業할 논으로 향하여 가는 過程에서 두레굿을 치고, 논에서 풀을 맬 때는 風物패도 논에 들어가 논매는 소리와 함께 역시 두레풍장굿을 친다.
    또한 作業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는 논주인을 사다리나 황소에 태우고 돌아오면서 두레굿을 치기도 한다.
    걸립형태는 마을이나 장마당을 돌며 걸립굿을 치고 돈이나 곡식을 걷는 專門的인 風物패를 말한다.
    걸립패에는 낭걸립패와 절걸립패가 있다.
    낭걸립패는 서낭기를 들고 마을을 돌며 고사굿을 치고 돈이나 곡식을 걷는 形態이다.
    낭걸립패는 절걸립패와 구별지어 부르는 말로 서낭을 받고 다니는 풍물패에서 由來되었으며, 풍물잽이들이 직접 걸립패를 꾸며 정초나 혹은 아무 때나 마을과 장마당을 돌며 집집이 걸립을 한다.

    걸립하는 의식은 동제(洞祭)의 집돌이와 유사하다. 먼저 마을의 당에 가서 神代를 세우고 舞歌나 舞樂의 도움으로 서낭을 받는다. 이들은 신이 내린 神代를 들고 집집이 돌면서 집돌이를 하는데 각각의 집에 가서 고사를 지내주고 돈과 곡식을 걷는다.

    03걸립패


    걸립패는 사찰의 건립이나 重唱을 위하여 募金하는 걸립패로 사찰의 탁발승들만 組織되는 경우와, 다른데서 따로 걸립패를 사서 걸립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 朝鮮時代 佛敎가 政策에 의해서 衰退함에 따라 財源의 貧困으로 사찰의 운영난이 深刻해지자 고륙지책으로 化主僧을 비롯한 수십명이 사찰의 굿중패를 만들어 탁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탁발승들이 법고, 바라 같은 것을 치고 나비춤, 법고춤과 같은 춤을 추며 고사염불을 부르고 걸립 다니는 걸립패도 있고, 또 여기에 여러 놀이꾼을 데리고 다니던 절걸립패도 있었다고한다. 연예형태는 專門的이고 職業的인 風物패가 관람자에게 판굿과 연회를 중심으로 보여주기위한 풍물굿을 말한다.
    이러한 형태는 舞臺藝術的 性格의 풍물굿을 말하는데, 이는 앞에서 살펴본 축원형태나 노작형태 또는 걸립형태와 전혀 다른 性格으로의 變遷이다.

    04연예형태


    따라서 연예형태의 풍물굿은 그 形態의 多樣性에 따라 다채로운 衣裳을 갖추기도하고, 여러 풍물과 잡색이 따르며, 군중(軍中) 진풀이를 방불케하고, 도둑잽이굿과 같은 연희적 요소를 강화하기도 하여, 窮極的으로는 舞臺化된 풍물굿을 통해서 興行과 關聯을 맺게된다.
    다시말하면 公演藝術의 한 分野로 자리잡는 形態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