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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산제
















    주민의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 당산제의 의미에 대해 더 알아보자!

    당산제로 대표되는 당산문화는 그 마을의 축제로서 전통마을에 있어서는 그 마을의 역사와 같이한다. 구성원(마을주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며 지신밟기 등 각종 민속놀이들이 행해진다. 이러한 문화는 언제, 어떤 연유로 시작되었는가?
    우리민족은 고대 배달한국시대 부터 “소도(蘇塗)”를 만들고 하늘에 제사하며 살아온 경천민족이다. 역사에서 배웠듯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등은 국가적 제천(祭天) 행사였다. 이를 통하여 국가의 안녕과 국리민복을 빌었으며, 신앙 터 역할과 국민을 가르치는 교육장 역할을 하던 곳이 “소도(蘇塗)”로써 신성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배달한국을 세웠던 한웅천황을 모신 사당 곧 한웅전(桓雄殿) 있던 곳으로 제정일체(祭政一體)시대에 국가 또는 지방의 최고 통수권자가 하늘에 제사하며 관리하던 곳이다.

    선황단(성황당 또는 서낭당으로 불리어 왔음)은 전통마을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선황단(선황당)은 제사와 정치가 분리되면서 제사(祭祀)는 선황(仙皇)이, 정치는 황제(皇帝)나 왕(王)이 하는 제정분리시대(祭政分離時代)에 민간에서 선황을 통하여 하늘에 제사하던 천제단이 있는 민간 신앙 터이다. 이곳은 주로 단산(壇山)(천제단이 있은 곳)이라 불리며 신단수로 상징되는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돌로 단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집을 지어(당집) 위패(位牌)를 모시고, 솟대를 세워 마을의 안녕과 번영 그리고 풍년과 풍어를 비는 제사를 모시던 곳이며, 동네 어귀에 마련되어 외부출입을 할 때는 무사귀환을 선황(한웅 할아버지)을 통해 하늘에 빌던 민간신앙 터가 당산(堂山)다.

    단산(壇山)이 당산(堂山)이라 불리 워 진 것은 위패을 모신 당집이 있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선황단(仙皇壇)도 선황당(仙皇堂)으로 불리워 지고, 오랜 세월을 거치며 중국의 문화와 습합 되면서 성황당(城隍堂)으로 잘못 불리 워 진 것이다. 또, 때를 정하여 제사하고, 마을 주민들이 모여 신을 즐겁게 하는 각종 놀이들이 행해 졌는데, 이것이 우리 민속놀이의 원형인 것이며, 당산제와 민속놀이는 곧, 한웅 할아버지를 통해 “하늘의 뜻을 이어받은 우리들이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이념으로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하고 한인님(하느님)께 보여주는 행사로써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마을 또는 고을 축제인 것이다.
    이는 마을 공동체를 단합시키고, 한민족의 맥을 이어왔던 것인데, 이곳이 일제에 나라를 점령당하고, 수 없는 당산이 훼손되었으며, 독재정권시절 새마을 운동이라는 미명아래 그나마 남은 선황당들이 우리 손에 의해 훼손되니, 누 천년 내려오던 찬란했던 민족문화유산이 거의 멸실 되었고, 간혹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 있기는 하나 이제는 그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이 만약 그대로 보존되었더라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을 법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나이 드신 동네어른들의 고증을 거쳐 원형데로 복원해 놓는다면 값진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선황당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장승이다. 그러나 장승의 의미나 유래는 잘 밝혀져 있지 않다. 우리의 상고사를 들여다보면 단군조선 이전에 한웅 할아버지들이 다스렸던 배달한국이 있었으며 18대 한웅천황 중 14세 한웅천황이 바로 우리배달한국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룬 치우천황이다.
    중국의 시조격인 황제헌훤 군대를 탁록대첩을 통해 굴복시키고 우리민족이 진정한 동북아의 주인이 되게 한 장본인이다. 황하유역에서 시작한 배달한국은 치우천황 때에 이르러 산동반도 쪽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국호를 구려(句麗)라 하였으며 일명 청구(靑邱)라 하였다. 훗날 한민족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구려를 계승하겠다고 나선 이가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이다. 곧 고구려는 고씨가 세운 구려 라는 뜻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분의 위대함과 신통력을 기리기 위해 우리민족을 지켜주는 신장(神將)으로 삼았으며, 이분의 형상을 깍아 세워 집단의 안녕을 빌어온 것이 장승의 유래이다. 참고로 중국민족의 신장은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이다. 실재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군대가 관운장기를 들고 들어 왔으며, 우리에게도 관운장의 신통력을 빌어 왜군을 물리치자는 명분으로 관운장 사당을 지어 제사하도록 강요했으며, 이를 받아들여 지은 것이 지금도 "관왕묘" 또는 "관성묘" 라는 사당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2002년 월드컵 때 축구응원단 붉은 악마들이 들고 나온 휘장에 무서운 인상을 하고 등장한 인물이 치우천황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그동안 장승을 미신의 대상으로 알고 없애 오지 않았던가? 이제야 치우(배달한국 14대 천황) 할아버지의 원혼이 조금이나마 달래어 지려나? 다행히 장승문화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며, 전통마을을 복원하는 데에는 선황당과 함께 반듯이 장승이 복원되어야 한다.